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량의 북벌 (문단 편집) === 2, 3, 4차 북벌(228~231년) === >명제가 장합에게 물었다, 장군이 더디게 도착하면 제갈량이 이미 진창을 차지해 버리진 않았겠소? 장합은 제갈량이 현군(縣軍-외떨어진 군사)으로 군량이 부족해 오랫동안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렇게 대답했다, 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제갈량은 이미 달아났을 것입니다. 손가락을 꼽아 계산해볼 때 제갈량의 군량은 10일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장합이 새벽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진격해 남정(南鄭)에 도착하자 제갈량이 퇴각했다. >---- >'''장합전'''에서 >지난해에 왕사를 빛내 왕쌍을 참수하고 올해도 정벌하여 곽회를 둔주(遁走-도주)케 했다. 저, 강을 항복시켜 모으고 2군을 회복했으며, 위엄은 흉포한 무리를 제압하고 공훈은 현연하도다. >---- >'''제갈량전'''에서 후주 유선이 >위 명제가 말했다, 서방의 일이 중대하니 그대(사마의)가 아니면 가히 맡길 만 한 자가 없소. >---- >'''한진춘추, 선제기'''에서 >당초 제갈량이 출군했을 때 의논하는 자들이 이르길, 제갈량군에 치중이 없어 군량이 필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니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것이어서 군사들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. 또 어떤 이는 상규 주변의 보리를 미리 베어 적의 식량을 없애자고 했는데 황제가 이를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. 그 앞뒤로 군사를 보내어 사마의의 군을 늘려주었고 또한 보리를 지키도록 명했다. >---- >'''위서'''에서 >장합이 군사를 나눠 옹, 미에 주둔시키려 하자 사마의가 말했다, 전군(前軍)이 홀로 적을 감당할 수 있다면 장군의 말이 옳소. 그러나 만약 능히 감당하지 못하면서 전군과 후군으로 나누는 것은, 바로 초의 3군이 경포에게 사로잡힌 까닭이었소. >---- >'''한진춘추, 선제기'''에서 >제갈량은 생각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하니 필시 영채를 안돈하여 스스로 방비를 굳게 한 뒤에야 보리를 수확할 것이오. >---- >'''선제기'''에서, 사마의가 >전진할 뿐 감히 적을 핍박하지 못하는 것은 의당 해서는 안 될 일로,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입니다. 지금 제갈량은 외떨어진 군사로 군량이 적으니 또한 곧 달아날 것입니다. >---- >'''한진춘추'''에서, 장합이 >공께서 촉을 범처럼 두려워하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면 어찌하시렵니까? 사마의가 이를 한스럽게 여겼다. >---- >'''한진춘추'''에서, 가허/위평이 >제갈량이 기산을 포위하였으나, 승리하지 못하고 물러났다. 장합은 그들을 추격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사망했다. 제(帝)는 장합을 애석해하고 조정 회의에서 탄식하며 말했다. > >명제가 말하길, > >"촉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장합은 죽었소. 장차 이와 같음을 어떻게 하오!" >---- > '''위략'''에서 조예가 >매번 제갈량이 관중(關中)을 침략하였는데, 변방의 병력들은 적을 능히 당해내질 못하자 ([[사마부]]가) 중군(中軍)을 이끌고 급히 도달했는데,번번이 사기(事機)에 미치지 아니하였다. 마땅히 보병과 기병 2만을 엄선하여 두 부대로 나누어 적(賊, 촉한)들을 토벌하기 위해 갖추었다. 또 관중(關中)에 적들이 침공하자 우연히 마주하였는데, 곡식과 비단이 부족하여, 기주(冀州)로부터 농정(農丁) 5천을 보내어 상규에 진을 치도록 하였다. >---- >'''안평헌왕부열전'''에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